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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6 대전인동장터만세운동 재연목적 "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일제에 항거한독립만세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고 숭배한다.
역사왜곡과 군사대국화로 부활하는 일본제국주의의 망령을 규탄하고 과거 침략사의 반성없는 일본을 똑바로 아는 장을 마련한다.
 
연극놀이, 풍물난장, 고문체험, 노래공연, 연희자와 기념 촬영 등을 다양하게 펼쳐내며 관중과 연희자 구분없이 본 공연을 위한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어울림마당이 1부로 펼쳐졌으며, 2부 거리극에서는 한·일 합방을 선언한 일제의 ‘침략’ 수탈을 일삼는 일제의 ‘착취’ 이에 맞선 선열들의 ‘분노의 함성’,‘용수를 씌워 압송, 처형하는 ‘탄압’에 대한 당시 모습이 장안 곳곳에서 재연되었다.

3부 마당극에서는 일본 어용사학자의 집안내력과 청산되지 않은 친일파의 행정을 통해 사회를 풍자하고 해학하는 ‘통곡의 미륵바위’- 깨지지않는 꿈을 공연하였다.

이와 함께 독립운동 사진자료 100 여점을 행사장 일원에 전시해 나라 사랑 정신을 고취시키는 데 큰 몫을 하였으며 이 행사는 매년 3.16 동구 인동장터에서 재연된다.
 
 
대전의 본격적인 만세 시위는 1919년 3월 16일 인동 가마니 시장에서 펼쳐졌다. 장날 정오 겨울동안 짠 가마니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시장에서 난데없는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장꾼들 모두 소리나는 곳으로 달려가 보니 누군가가 쌓여진 가마니 더미 위에서 태극기 흔들며 만세를 외치고 있었다. 당시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이는 30대 청년 양태석(아호 사길)이였고 김노원, 장운심, 권학도 등의 청년들이 태극기를 나누어주며 행진대열을 짜고 시위를 주도했다. 장꾼들은 삽시간에 불어났고 오후를 지나면서 격렬한 시위로 변하여 인동일대와 경찰서가 있는 원동을 돌며 만세를 외쳤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오후가 지나자 용두동(현 문화방송 자리)에있는 보병대가 출동하여 무차별 총격으로 탄압하기 시작하였다. 이날 결국 15명이 사망하였고 수 십명이 부상하였으며 9명이 체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