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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의 역사적 유래 백제시대의 동구 통일신라시대의 동구 고려시대의 동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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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말에는 통치력이 약화되고 조세의 과다한 부과로 농민들의 봉기가 빈번하게 일어나면서 지방 각지에서 군웅이 등장하였다. 대표적인 사람으로 견훤.궁예.양길 등을 들 수 있다. 그 중에서 견훤은 백제의 부흥을, 궁예는 고구려의 부흥을 표방하여 각각 후백제.후고구려를 세우니 신라는 다시 3국으로 분열되어 이른바 후삼국이 성립되었다. 그리하여 신라는 경상도 지역을 중심으로 한 삼국시대의 신라영역으로 다시 그 판도가 축소되었고, 경기.강원지역은 궁예가 장악하였으며, 충남.전라지역은 견훤이 지배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 시기의 대전 동구 지역은 주로 후백제의 변경지대에 해당했다.

왕건은 궁예를 몰아내고 918년에 고려를 건국했다. 태조 왕건은 왕위에 오른 후에도 계속적인 정복사업을 펼쳤는데, 이러한 정보과정에서 지방제도가 변경.개편되기도 하였다. 고려 태조는 후삼국을 통일한 후, 940년에 군현제에 대한 일단의 정비를 하였다. 고려초에 개명된 군.현 단위의 작은 주는 어쩔 수 없었지만 새로 큰 주가 정해졌다. 광주.충주.원주.청주.공주.상주.양주.전주.광주.춘주.명주 등이 그것이다.

<<고려사>>지리지에는 고려의 군현제가 왕경개성부를 비롯하여 5도(양광도.경상도.전라도.교주도.서해도).양계(동계.북계)로 구분되어 왔다. 그리고 그 밑에 경.도호부.목의 행정구역이 있고 그 아래에 주.부.군.현.진이 영속되어 있으며, 다시 외관이 파견되지 않은 고을이 외관이 파견된 군현과 주속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통치체계는 고려말기의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5도는 고려전기에 형성된 행정구역으로 보기에는 문제점이 있다. 고려전기에는 5도뿐 아니라 6도.7도.8도.9도.10도 등의 용례가 보이기 때문이다. 5도가 어느정도 자리를 잡은 것은 고종 무렵부터이며, 양과도.경상도.전라도.교주도.서해도라는 5도명이 확정된 것은 <<고려사>>가 편찬된 조선초기로 추정되고 있다.
이와같이 5도는 원래 지방행정제도와는 관계없이 중앙에서 파견되는 안렴사.염문사.권농사 등 여러 사신들이 외방에 나가 담당하던 구획을 가리키는 지방구역으로 사용되어 왔는데, 차츰 담당구획이 고정되어 마치 지방행정구획의 명칭처럼 관용되었다.

대전지역은 공주.회덕.진잠.덕진.유성과 관련이 있었다. 이들 고을의 상호구조를 <<고려사>>지리지를 통해 정리해 보면, 외관이 파견된 지사군인 공주에 4개의 속군과 8개의 속현이 있었는데, 회덕군.진잠현.덕진현.유성현은 모두 공주의 속현으로서 주속관계가 형성되어 있었다.

고려시기에 대전지역에도 부곡제영역이 존재하고 있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명학소(유성현 동쪽 10리), 갑촌소(유성현 북쪽 10리), 복수소(유성현 동쪽 23리), 촌개소(유성현 동쪽23리), 침이소(회덕현 북쪽 18리), 박산소(덕진현 동쪽 5리), 금생소(덕진현 동쪽 7리), 서봉부곡(회덕현 동쪽 21리), 흥인부곡(회덕현 동쪽 18리), 미화부곡(유성현 동남쪽 28리)등이 있었다. 이 중에서 지금의 동구 영역내에 위치한 것으로 추정되는 것은 서봉부곡(현 동구 용계동)과 흥인부곡(현 동구 신상동)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