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동구의 문화와 역사 > 동구역사
 
동구의 역사적 유래 백제시대의 동구 통일신라시대의 동구 고려시대의 동구
조선시대의 동구 근대/일제시대의 동구 현대의 동구  
 
 

갑오경장은 한국 근대화 과정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니는 대개혁으로, 개혁의 범위는 정치.경제.사회 등 다방면에 걸친 것이었다. 이러한 개혁내용에는 지방제도도 포함되어 있어서, 1895년 5월 26일 칙령 제 98호로 과거의 8도제가 폐지되고 대신 전국이 23부로 개편되었으며, 부 밑에는 한결같이 군을 두어서 부윤.대도호부사.목사.도호부사.군수.현령.현감 등 복잡하던 지금까지의 행정체계를 간소화하였다.
이 시기 충청도는 23부 개편으로 충주부.홍주부.공주부의 3부로 나뉘게 되었다. 이 중 오늘날의 대전 동구가 속해 있던 공주부는 공주에 부청소재지를 두고, 공주군.은진군.연산군.부여군.옥천군.회덕군.진잠군.회인군.영동군.진산군.금산군 등 총 26개의 군을 거느리게 되었다.

1905년 1월 1일부터 대전 지역을 가로질러 경부선 열차가 달리기 시작하자, 대전역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대전의 인구가 급증하게 되었고, 물산이 집중했으므로 근대 상업도시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1914년 3월 군제개편시에는 회덕누.지잠군 일원과 공주군의 현내면 등을 폐합하여 대전군을 신설한다. 대전군 12개면 가운데 오늘날의 동구와 관련이 있는 지역은 외남면.대전면.산내면.동면.내남면 등이다.

일제는 1917년 '면제'를 공포하여 조선면제를 실시하면서 '내선인 거주 및 호구 집단의 상황과 공공시설을 참작하여' 이른바 '상담역'을 둘 만한 면을 '지정면'으로 정하고 이를 특별 관리하였다. 이 지정면은 사업능력이 인정되어 지방공공업무의 폭이 넓어졌으며 아울러 호별반.지세할.특별부과금.사용료.수수료.기체 등 자체 재원조달능력이 강화되었는데, 당시 대전면은 지정면으로 분류되었다. 지정면의 요건으로는 일본인이 많고 재력이 풍부하며 비교적 도시적인 곳으로서 주로 상공업지대로 공공시설을 많이 요하는 곳, 호구 1500이사상으로 그 중 2분의 1이상이 집단하여 있느 곳, 협의회 선거권을 가진 자가 수백 이상인 곳, 면부과금 1호 평균 7원 이상 부담할 수 있는 곳 등이었다. 1920년 당시 이러한 지정면은 24개면 이었는데, 대전면도 바로 여기에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대전은 철도부설로 서울과 영호남을 연결하는 교통중심지가 됨으로써 일제가 대륙침략을 하기 위한 거점이 되었던 것이다.

대전면은 1926년에 대전군 외남면 일부(외천리.신대리.대동리.소제리.연효리)를 편입하고, 처음으로 대전도시계획사업을 실시하였다. 그 후 1931년에는 총독부령으로 공포된 읍면제에 의하여 종래의 지정면은 읍에서 나머지 보통면은 면으로 각각 개칭됨으로써 읍과 면이 비로소 구분되기 시작하였는데, 이때 대전면도 대전읍이 되었다.

1932년 충남도청이 공주에서 대전으로 옮겨오면서 대전의 발전속도는 가속도가 붙게 되었다. 한반도 강점 이후 일제는 경성을 중심으로 X자형의 철도망을 구축한 뒤 이를 골간으로 식민지 개발정책을 추진하였다. 대전이 도청소재지가 되면서 대전읍은 확장되고 각종 산업시설이 들어섰다. 1935년 10월 대전읍은 북정.유정.연병정.대사정.천정.청수정.동정.영정삼정목 등 대전군 외남면과 유천면의 일부를 편입시켜 행정구역을 확장하고, 11월 1일에는 대전읍이 대전부로 승격하였으며 대전군은 대덕군으로 개칭되었다. 1940년 11월에는 다시 대전부의 행정구역을 확장하여 외남면의 산소리 석교리 등과 유천명의 평리 일부.과예리.당대리를 편입하여 32개동을 관할하게 됨으로써, 24개부중 17번째로 큰 도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