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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의 역사적 유래 백제시대의 동구 통일신라시대의 동구 고려시대의 동구
조선시대의 동구 근대/일제시대의 동구 현대의 동구  
 
 
1945년 광복 이후 현대의 대전은 행정.경제.문화의 중심지로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 1945년부터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전까지의 미군정시기에는 자유민주주의 정치.행정제도가 우리 나라에 소개되면서 제도상의 개혁이 시도되었다. 1948년에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고, 1949년에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 부제가 시제로 개편되자 종전의 대전부도 대전시로 개칭되었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대전은 6월 27일부터 7월 16일까지 임시수도 기능을 하기도 했다. 한국전쟁은 대전을 일본인 중심지였던 도시에서 새로운 상업도시로 발전케 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전쟁 초기에 남쪽으로 내려오던 많은 피난민이 대전에 정착하였고,
 
한국전쟁 후기에는 전선이 휴전선 근처에서 교착상태에 이르면서 남쪽에 피난하였던 사람들과 경상.전라도 지역의 주민들이 대전으로 이주하여 정착함으로써 대전은 8도 사람들이 골고루 모여 사는 도시가 되었고, 인구도 급즈하였다.

한국전쟁 이전의 대전 인구는 10만이 조금 넘었으나, 1951년 전쟁중의 인구는 20만을 훨씬 넘어섰다. 이와 같이 대전의 인구는 급증하였으나, 생산시설은 보잘 것 없어 이들의 생계를 해결하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리하여 옛부터 내려오던 교통의 요충지라는 잇점을 살려 상업도시.교통도시로 발전하게 되었다. 당시 가장 중요한 교통수단은 철도였으므로 주로 대전역 주변에 상권이 형성되었고, 특히 동구지역의원동시장은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1977년 대전에서 처음으로구제가 도입되어 동구.중구의 2개구청이 설치되고, 출장소제는 폐지되었다. 동구.중구의 영역은 대전천을 경계로 하였고, 동구는 22개의 법정동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당시 동구의 청사는 정동에 있는 전 대전문화방송사옥을 사용하다가, 1980년 12월 10일에 전 원동초등학교 자리였던 현청사(원동 85-5번지)로 이전하였다.

1995. 1. 1 대전직할시가 대전광역시로 명칭이 변경되어으며, 1998. 12. 14 구조례로 원동·정동·중동을 통합 중앙동으로, 대1동·신안동을 통합 대신동으로 대2동을 대동으로, 추동·세천동을 통합 대청동으로 통폐합되어 행정통수는 21개동으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