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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동구지역에는 언제부터 사람들이 살았을까?
동구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궁금증을 갖고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는 것이 바로 고고학이다.
현재 동구지역에는 조사되거나 발굴된 유물이나 유적 가운데 가장 오래 된 것은 청동기시대의 것이다. 사성동 유적.비룡동 선사유적.세천동 선사유적.삼정동 선사유적 등에서 발굴된 고인돌.무늬없는 토기편.김해식 토기련등이 바로 청동기시대의 것이다. 이는 청동기시대에도 대전 동구지역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표라 할 수 있다.

일찍이 1960년대에 대전과 인접한 공주시의 금강유역에 있는 장기면 석장리. 반포면 마암리에서 구석기시대에 사람들이 살았던 자취가 확인되었고, 최근에 대전시 서구의 구즉동과 둔산동에서 구석기 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유물이 채집되었다. 따라서 대전 동구지역도 구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이 정립하기 이전, 한반도의 남부지역에는 마한.진한.변한으로불리는 수십개의 수국이 병립하고 있었는데, 이를 삼한이라고부른다. 이 시기 대전 동구지역은 마한에 속해 있었다. < <삼국지> >위서 도이전에 의하면 마한은 54개의 소국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시기를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삼한 수국의 위치 지정에 대새서는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에 쉽게 단정지을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대전광역시 동구는 동쪽으로 충청북도 옥천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고, 서쪽으로 대덕구.중구에 접하고 있으며, 남쪽으로 금산군, 북쪽으로 충청북도 청원군.옥천군과 이웃하고 있다. 동쪽의 구릉지대에는 계족산. 응봉산. 식장산 등이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으며, 서쪽에는 갑천과 대전천이 서구.중구와 경계를 이루면서 흐르고 있다. 또한, 그 사이에서 중북부의 법동 일대를 흐르면 가양천, 소제동. 판암동. 신안동 일대를 흐르는 대동천과 판암천이 대전천으로 각각 흘러 들어가고 있다.

행정적으로 동구는 1977년 9월 1일 대전시에 구제가 도입됨에 따라, 종전의 동부출장소와 북부출장소를 통합한 22개 행정동으로 출발하였다. 그 후1983년 2월 15일 대덕군 회덕면 일원을 편입하여 24개동이 되었고, 1983년 10월 1일에 오정동을 오정동과 대화동으로 분할함으로 25개동이 되었다. 1989년 1월 1일에는 행정구역의 개편으로 대전시가 대전직할시로 승격됨과 동시에, 종전의 대덕군 동면 일원과 산내면의 낭월.대별.이사.대성.장척.소호.구도.삼괴.상소.하소리가 동구에 편입되고, 동구의 오정.대화.읍내.연축.신대.와동.송촌.법동.중리.비래동이 대덕구에 편입되면서, 행정동수는 다시 24개로 줄어들었다.

1995. 1. 1 대전직할시가 대전광역시로 명칭이 변경되어으며, 1998. 12. 14 구조례로 원동·정동·중동을 통합 중앙동으로, 대1동·신안동을 통합 대신동으로 대2동을 대동으로, 추동·세천동을 통합 대청동으로 통폐합되어 행정통수는 21개동으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