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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신앙

탑제

추진배경

정월대보름을 맞이하여 이웃간 훈훈한 정이 넘치는 우리고유의 미풍양속을 되살려 주민화합과 우리전통문화를 계승발전 시키는데 있다.



유래

용운동에서 대전대학으로 가는 도로의 중간지점에 남장승이 서있고 그와 맞은편 용운 고층아파트 밑에 여장승이 서있다.

주민들에 의하면 본래 장승 옆에는 돌로 쌓아 올린 탑이 함께있어 주민들로부터 치성을 받아 왔다. 그런데 1970년대 초에 도로를 넓히면서 탑은 소실되고 장승만 남게 된 것이다. 지금도 장승을 탑이라 부르는 것과 장승에 대한 제의를 탑제로 칭하는 까닭은 바로 장승곁에 탑이 잇었기 때문이다.

용운동에서 탑을 세운 까닭은 대략 이러하다.

아득한 옛날 마을에 전염병이 창궐하여 아이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일이 빈번히 발생했다. 그리하여 동네의 민심은 흉흉해지고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하루는 이곳을 지나던 노인(지관)이 이르기를 “마을의 지세가 강하기 때문이니 그 재앙을 막으려면 냇물을 막아 보를 만들고 둠벙의 양쪽에 탑을 쌓아 지세를 눌러야 좋다.” 고 일러주었다. 지곤이 보를 만들라고 한 것은 마을 의 형국이 용이 솟을 형국이므로 용-실제 용운동 장승이 있는 마을 자리는 용의 꼬리 부분에 해당한다고 한다. ?은 물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리하여 마을 에서는 둠벙을 만들고 탑을 쌓게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주민에 의하면 이와는 상황이 좀 다르다. 즉 100년 전에 마을에 질병이 잦고 재앙이 빈번하여 동네가 뒤숭숭했다. 하루는 임현빈(작고)이라는 사람이 할아버지탑이있는 부근을 지나가게 되었다. 지금은 이곳에 도로가 나고 살림집이 빽빽하게 들어섰지만 예전에는 찔레나무가 무성한 산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찔레나무 속에서 “탑을 쌓으면 마을의 변고가 사라질 것이니 하루 빨리 탑을 세워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그는 이 사실을 어른들에게 알렸고 이에 동네에서는 탑을 쌓았더니 과연 이후로는 돌림병이 씻은 듯이 물러 갔다고 한다.

이와 같이 탑의 축조와 관련하여 전해지는 이야기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질병과 재앙을 물리치기 위해 탑을 세웠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용운동 탑제를 주관하고 계신 임운혁씨에 따르면 소실된 탑의 크기는 할아버지탑이 2.5M, 할머니탑은 2M가량 되는 매우 큰 탑이었으며, 매년 탑제를 지낼 때 황토를 펴고 금줄을 쳤다고 한다.

삼정동 오방신장탑

판암동 2단지 아파트 왼편 남부순환도로 옆길로 걸어서 3∼5분 거리에 있는 삼정마을에 있다.

식장산 서북 기슭의 큰삼정마을에서 골삼정마을로 넘어가는 고개길 위에 숫탑이 있고, 골삼정마을 입구에 암탑이 있다. 120∼130년전, 마을의 지력을 눌러주던 수구막이 느티나무를 잘라낸 뒤 재앙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자 마을회의를 열어 나무를 대신할 탑을 쌓기로 하고 골삼정과 큰삼정에 같은날 동시에 동구밖에 탑을 쌓고 제를 지냈다. 이후 매년 정월 14일 탑제를 지낸다. 이곳의 탑은 꼭대기에 흔히있는 머릿돌이 없고 ‘오방신장기’라 하여 깃발이 동서남북과 중앙에 꽂혀있다.

용문동 선랑마을 탑

선량은 대전대 정문을 지나 오른편 군부대와 운동장 가는길로 가다가 오른쪽 아래로 보이는 마을이다.

탑은 마을 입구에 있다. 잡석을 원뿔대 모양으로 쌓아올린 것으로 음력 정월14일에 탑제를 지내는데 집집마다 대주(집안어른)의 소지(소원을 비는글을 적은 종이를 태우는 제식)를 올려준다.

용문동 용뱅이 탑

용운동의 남장승과 여장승옆에 같이 있었으나, 1970년대 도로확장으로 탑은 소실되고 장승만 남아있다.

옛날 용운동에 전염병이 창궐하여 아이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민심이 흉흉해져 근심이 끊이질 않았다. 하루는 이곳을 지나던 노인이 “마을의 지세가 강하기 때문이니 그 재앙을 막으려면 냇물을 막아 보(洑)를 만들고 둠벙의 양쪽에 탑을 쌓아 지세를 눌러야 좋다”고 일러주어 마을에서 둠벙을 만들고 탑을 쌓게 된 것이라한다.

직동 서낭당 팽나무와 탑

피골 정류장 왼편 150m쯤에 보인다.

수몰전에는 갈전동으로 통하는 동구밖에 남자탑과 여자탑이 있었으며, 매년 정월 14일 웃피골과 함께 거리제를 지냈다. 탑은 수몰과함께 물에 잠겼고 지금있는 탑은 개인이 매년 정월에 치성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