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문화와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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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유래

소제동

위치

동구 동쪽 중앙에 위치한 동으로서, 대전역 동쪽으로 철도 건너에 있다. 소제동은 동으로는 자양동, 서로는 정동, 남으로는 신안동, 북으로는 삼성1동과 가양동과 연접해 있다. 동의 중앙지점에 남북방향으로 대동천이 흐르고, 대동천 옆으로 계족로가 나란히 있다. [유래] 솔라이에 소재호가 이곳에 있었으며, 그 부근에 있던 ‘소제’라는 자연 부락의 이르에서 유래되었다 한다.

유래

솔라이에 소재호가 이곳에 있었으며, 그 부근에 있던 ‘소제’라는 자연 부락의 이르에서 유래되었다 한다

연혁

백제때는 우술군, 신라때는 비풍군, 고려초기에는 회덕현, 고려 현종 때느 공주부에 속했다. 조선 초기에는 회덕군 외남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동강리, 성동리, 탁곤리, 대동리, 소제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소제리라 해서 대전군 외남면에 편입되었다. 그 후 1935년 대전부제 실시에 의하여 소제정이라 하여 대전부에 편입되었다. 1946년 해방 이후 왜식 동명 변경에 따라 소제동으로 고쳤으며, 그 뒤 대전시 동구에 속하게 되었다. 1989년 1월 1일 대전직할시 동구 소제동이 되었다가 1995년 1월 1일 대전광역시 동구 소제동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지명

며느리바위[바위] 소재 뒷산에 있었다. 산을 다 까뭉개서현재 위치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자양동에 있는 대전실업전문대학의서쪽이 되겠다. 전설에 다르면, 소제 마을에 사는 노랭이 영감이시주하러 온 스님을 푸대접하여 홍수가 나서 집이 몰락했다. 그 때, 며느리는 도승의 권고로 집을 뛰쳐 나와 이곳까지 도망쳤으나 천둥소리에놀라 뒤를 돌아본 것이 화근이 되어 바위로 변했다 한다. 그래서이 바위를 며느리 바위라고 부른다.
묘각사[사찰] 대전시 동구 소제동에 있으며 절로 1924년창건하여 대성산 법주사라 하였다가 1946년 산내면 정생리에 있는 묘각사를몲겨와서 다시 대성산 묘각사라 한다.
소제[마을] 솔랑이 서쪽, 소제호 부근에 자리한 마을로서지금의 철갑교 동쪽, 우암 송시열 고택부근에 있었다. 소제호 부근에 있었던 마을로소, 소제호의 이름에서 유래하였고 조선시대효종 때에 거유인 우암 송시열이 글을 읽고 소요하던 곳으로서, 그고택은소제동 파출송서 계족로 건너편에 있다.소제호[못] 소제 마을 부근에 있었고 솔랑산 아래에 풍경이 으뜸가는방죽이어서 차지기 소자에 둑제자를 따서 소제호라고 하였다. 소제호부근에는 봄이면 개나리 꽃이 만발하였으며, 일제시대부터 대전역 건설에따라 마을이 커서 방죽을 메웠다
솔랑이(소을광이, 솔광이)[마을] 소제 마을 동쪽에 있던 마을로 지금의 철도아파트부근에있었다. 솔랑산 아래 마을이 있으므로 솔랑이라고 불렀으며, 이것이 변하여 소을광이, 솔광이라고 하였고 옛날부터 솔랑산에는 뗏집을짓고 글을 읽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 마을에는 글을깨우친 사람들이 많았다 한다.

사진자료